프리랜서 10년차, 이제 초석을 쌓았다.
말이 프리랜서지 무직, 한량이라는 가면이었을테다.
나에게는 ‘취업으로 얻을 수 있는 5가지’가 없었다.
✔️내일의 안정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이유
✔️나를 소개하는 한마디
✔️효율성의 근원인 루틴
✔️계획할 수 있는 돈의 흐름.
이 5가지가 없는 인생은 그 자체로 여행이었다.
익숙한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경험, 꽤 값졌다.
10년 후인 #지금내게는
💜 내일의 안정은 없지만, 이번 생에 대한 확신은 있다.
💛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 오늘을 맞이하는 상쾌함은 있다.
💙 나를 소개하는 한마디는 없지만, 이번 생의 나의 소명은 있다.
🧡 규칙적인 루틴은 없지만, 내 생체리듬을 읽을 수 있다.
💚 돈의 흐름을 계획할 수는 없지만, 현명한 소비습관이 있다.
🪄Back To The
8년 전까지만해도 많은 사람들을 서로 소개해주면서 지냈다. 그때는 그것도 능력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 내 머릿 속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담겨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그런 그림들이 자연스레 그려졌었다.
덕분에 새로 생기는 맛집 또는 브랜드는 누구보다 발빠르게 항상 업데이트가 되어있었고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게 낯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을 소개해주고나면 나의 역할이 일회성으로 끝나버리는 거 같았고, 더이상 쓰임이 없어지는 공허함이 확 밀려온 적이 있었다.
오지랍인거 같았고,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될수록 혼자있는 시간은 적어졌다. 나의 24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흘러갔으며 바쁜 일과는 보냈지만 보람찬 하루는 몇날 안 됐던거 같다.
이대론 안될거같아서 한순간에 잠수를 탔다. 연락이 오면 거절하는게 힘들어서 계속 해외로 나갔다.
한때 사람들의 안부 인사가 ‘한국이야?’라는 말이였을 정도로 내가 한국에 있는게 이상한 때도 있었다.
물리적으로 멀리있게 되면 나의 거절은 합당한 게 되니까. 그렇게 나는 나쁜 사람이 되기 싫으면서도 내 시간을 가지고 싶은 이상한 이기심을 가졌다.
트렌드 좇는 일을 하다가 세상의 귀를 닫고 내 색깔을 찾겠다고 동굴로 들어가버린 거였다.
처음엔 동굴이 무섭기도 했지만 금세 적응하고 잘 지냈다. 그림도 그리고 글장난도 하고 사진도 찍고.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았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내 빛깔을 찾아갔고, 남들의 걱정에 비례하여 나의 만족감도 커져만 갔다.
그렇게 내 빛깔을 찾아서 동굴에서 나왔는데 동굴 밖이 낯설다. 햇빛이 번지는 동굴 밖에 서서 부신 눈을 지그시 뜨고 가만히 세상 소리를 들은지 한두해 지난거 같다.
앞이 조금씩 선명해지는데 내 앞엔 나를 반겨주는 오래된 언니오빠친구들이 서 있다.
이번 달부터는 이상하게 옛 인연들이 만나진다.
어버이날에는 뚜벅이로 진짜 몇년만에 청담동엘 갔다. 새로 얼굴을 내민 가게들, 아직도 자리하고 있는 가게들을 보면서 아쉬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낯선 감정을 즐기고 있었다. 걷다보면 쉽게 아는 사람을 만나곤 했었던 시절이 떠오르니 그 거리가 더 낯설게 느껴졌다.
약속 장소에 다다를때쯤 누가 내 앞으로 뛰어왔다. 놀랠 새도 없이 마주하게 된 상황. 나를 알아본 것도 신기하고 긴가민가하면서도 용기내어 말 걸어준 것도 고마웠다.
싱글이냐는 인사가 제일 먼저다. 그다음은 갔다온건 아니냐는 인사. 세월이 흘렀다. 10년을 10초 만에 보낼만큼 강력한 말이었다. 서른 이후로 나는 나이를 제대로 센 적이 없기 때문에 꽤 신선했다.
걷다가 우연히 마주하는 인연도,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오는 인연도,
10년 전엔 인연이라는 이름의 선물로
지금은 만남이라는 이름의 선물로
다시 내게 오고 있는 사람들.
내 인생은 어느 길을 향해가고 있는 걸까,
궁금하고 설레고 감사한 하루하루다.